정치일반

대선 소회

노무사L 2022. 3. 11. 16:53

하루 지나니 마음이 좀 차분해졌다. 5년 전부터 지지했던 후보였기에 더욱 상심이 크다. 그래도 너무 늦기 전에 간략히 느낀 바를 기록해두고자 한다.

#정의당은 동네북이 아니다.
1% 격차도 나지 않는 초박빙 승부다 보니, 죽은 자식 부랄 만지는 격의 후회도 보인다. 대선 패배를 두고 정의당을 탓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결과론적인 비난이다. 골수 정의당 지지자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을 막기 위해 이재명을 선택한 경우가 더 많다. 심상정 캠프에 선거 당일 저녁에만 12억의 기부금이 보내졌다. 윤석열을 막겠다는 명분 하에 이재명을 선택한 심상정 지지자들이 미안한 마음을 보내온 것이다. 대의를 위해 다른 당 후보에게 표를 넘겨준 상당수 정의당 지지자들과 화학적 결합을 위해서라도, 지지자 간 반목은 없어야 한다. 오히려 민주당으로서는 정의당과의 선거 연대를 오래전부터 준비했어야 하는 과제(課題)가 과제(過題)로 된 문제를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뿐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생각
오차범위 내 윤석열 우세를 발표한 기관까지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문자 그대로 '오차범위 내' 우세니까, 실제 선거 결과와 동떨어진 조사를 했노라 비판하기에는 멋쩍다. 그러나 선거 직전 윤석열의 오차범위 바깥 우세를 발표한 몇몇 여론조사 기관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가 선거 직전 남긴 글. 리서치뷰는 오차범위 밖에서 윤석열 우세를 발표했었다.

ARS로 진행한 여론조사는 전화면접에 비해 양후보간 격차가 더욱 컸는데, 예전부터 ARS 조사는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줄곧 있어왔다. 한국갤럽 등 몇몇 여론조사 업체가 전화면접으로만 조사를 진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표가 시작되면 ARS가 더 정확한 조사기법임이 인정될 거라 자신만만한 업체 대표도 있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론조사, 특히 ARS로 진행된 여론조사 중 일부는 정확도가 형편없었다.

대세가 여론조사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가 대세를 만든다면 큰 문제 아니겠는가?

#이번 선거로 민주진영이 얻은 것
그래도 이 꼭지는 써야 속이 좀 다스려져야 할 것 같았다. 선거는 졌지만 얻은 것이 분명했다. 전투는 졌지만 전쟁은 지지 않았다.

우선 박지현 위원장이다. 이번 선거에서 얻은 보석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유권자들을 단결시킨 것 이외에도,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개인의 능력이 빛났다. 메시지 전달력과 진정성이 선거 내내 돋보였다. 당장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에서도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범진보진영 득표율 49%이다. 진영 대결 선거가 가까운 과거에 한차례 있었다. 12년도 대선이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51%를, 문재인 후보가 48%를 득표했었다. 이번 선거는 그때보다 보수 진영 득표율이 줄었고, 동시에 범진보 진영 득표율은 늘었다. 헌정 사상 최소 득표차로 결정된 이번 대통령이기에 보수 진영도 국정 운영에 있어 막무가내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재명이다. 일전에 유시민 작가가 이재명을 두고 거듭 진화해가는 정치인이라 평한 적이 있다. 동의한다. 본인에게 걸려있는 사법 리스크만 해소된다면 다음 대선까지도 노려볼 수 있겠다.

#지방선거까지 민주당의 과제
어제 진중권 교수가 윤호중을 비대위장으로 앉힌 민주당의 결정을 비판했다. 금태섭 같은 외부인사를 데려왔어야 한다는 비판이었다. 동의하기 어려운 비판이다. 지금도 막전막후에서 민주당내 계파 싸움을 유도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와중이다. 외부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면 집안싸움에 효과적 대처가 어렵다. 적어도 지방선거 이전까지는 친문, 친낙, 친이계 분란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더욱 페미니즘 성향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이번 초접전 승부도 결국 2030 여성들의 단결된 표심이 바탕된 것이다. 이준석 대표가 여가부 폐지 공약을 무조건 이행하겠다고 누차 밝히고 있다. 허니문 기간이라는 이유로 윤석열 정권의 반여성주의적 정책에 맥없이 끌려다닌다면 박지현 위원장 열명이 있어도 여성표 이탈을 막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선거 세 곳 중 두 곳은 이긴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제일 어려운 곳이 서울시장이다. 이기겠다면 적어도 정세균 전 총리와 같은 인사가 출마해야 한다.